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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1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쓰는 사진이란 것에 관한 나의 철학

 

slrclub 이란 유명한 커뮤니티를 잘 알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카메라 유저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좋은 강좌, 좋은 리뷰, 좋은 사진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

친목도모는 기본. 사진에 대한 열띤 토론과 질의응답으로 24시간 1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곳.

글을 쓰면 1초에 덧글이 5개가 달릴 정도로 유저들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다.

 

하지만 난 slrclub이 싫어지고 있다. 아니 싫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진기를 아는 것이지, 사진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소개에 자기 보유 장비들은 도대체 왜 써놓는 것인지?

-클릭해서도 볼 수 있는 사진의 EXIF 정보를, 왜 굳이 힘들게 손으로 써놓는 것인지?

-특히나 카메라 바디만 300~1000만원 대를 오가는 캐논의 EOS 1D/1Ds 시리즈, 니콘의 D3, d700, D300 같은 모델들은 왜 굳이 글씨를 boldic 처리 하면서까지 써놓는 것인지?

-하나에 100~200만원을 오가는 고가의 렌즈들, 특히 캐논의 L렌즈 군. 이름도 Luxury의 L을 따온 것인데. EXIF 정보랍시고 왜 이 L자를 24-70L 이라고 빨간색까지 칠해가면서 써놓는 것인지?

-왜 slrclub의 1면 인물 사진에는 모델 뺨치게 예쁜 여자들의 사진만 올라오는지?

 

이들은 사진이 아닌 사진기를 잘 아는 것이고, 사진을 읽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눈만 즐거운 사진들을 보고만, 찍고만 있다.

천편일률적인 풍경사진들. 그저 눈만 즐거운 인물사진들.

굉장히 비싼 바디와 렌즈를 이용하여 돈만 있으면, 조금의 포토샵 기술만 있으면 개나 소나 다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을 두고서 1면에 올리고 고수라고 대접하고 내공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럼 한대에 1000만원이 넘어가는 카메라만 들고다니는 기자들은 모두다 퓰리쳐 상을 수상했게???

 

물론 사진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적인 자연의 풍경들을 최대한 현장감있게 찍어내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을테고

인물 사진에서 인물의 표정을 통해 인물이 갖는 미묘한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냥, 그런 것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고가의 장비가 최고인냥, 장비를 잘 다루면 고수인냥 취급하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난 개인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진이 진짜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읽을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풍경사진과는 달리 사람들에게 세대로부터 세대로 읽히고 또 읽히며 전해지고, 그 속에서 끝없는 발견과 생각을 창출시킨다. 예를 들자면 베네통 광고사진, 퓰리쳐 상 수상작- 수단의 굶주린 소녀, 그외. 정도가 있지 싶다.

 

 

50년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어떤 형제는 자전거와 아코디언을 팔아 낡은 편물기계를 하나 마련한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옷을 짜내어 팔기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베네통이란 브랜드의 시작이다.

 

이들은 독특한 색깔의 옷으로 60년 로마올림픽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돈이 조금씩 모이자 베네통 그룹을 세우게 된다.

70년대, 이들은 이탈리아에서 제일 큰 의류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80년대부터 그들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바로 그들의 독특한 광고 때문이었다.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란 사진작가는 1983년부터 2000년도까지, 무려 17년 동안이나 베네통 광고사진을 찍었다.

종교와 사랑의 벽 - 신부와 수녀의 키스,

에이즈 퇴치 - 무지개 색깔로 배열된 콘돔,

인종/남녀차별 - 흑인과 백인과 동양인의 남녀 성기 사진을 수백장 나열한 사진, 인종차별을 몰아내기 위한 수가지 사진들.

전쟁없는 세상 - 국립묘지에 솟아있는 수천개의 십자가들. 

도대체 옷과 이런 사진들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들은 이런 캠페인 사진으로 세계인의 끝없는 논란을 일으켰고 그렇게 눈길을 끄는 마케팅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때로는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바닥을 기게 되더라도 말이다.

(사진들이 너무 자극적인 관계로 첨부는 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역대 퓰리쳐 상 수상작.

 

 

1994년. 수단의 굶주린 소녀.

아프리카의 기아상황을 촬영하기 위해 수단에 들어간 케빈 카터라는 사진기자의 작품.

너무나 굶주려 벌레처럼 말라있는 수단의 소녀가 뙤악볕 밑에 반 쓰러져 있다.

그리고 뒤의 독수리는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녀를 먹기 위해서...

케빈 카터는 이 사진을 촬영하고 바로 독수리를 쫓아낸 뒤 소녀를 기아센터에 데려가 구했지만

그가 이 사진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한 후에는 엄청난 논란이 불거졌다.

물론 아프리카의 심각한 기아상황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그보다 앞서 인간의 도리라면,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소녀를 구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케빈 카터란 사진작가는 33세의 나이에 자살을 택했다.

 

 

1951. 대동강 철교.

다름아닌 바로 우리 한민족의 비극을 말하고 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강을 건너 남쯕으로 계속 도망쳐야만 살 수 있다.

그 유일한 길이 폭격으로 부숴져 괴물처럼 쓰러져 있는 대동강 철교였다.

이 철교에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생존을 위해 남으로 향하는 모습이 말없이 그 비극을 전하고 있다.

 

 

1989년. 세인트 루이스의 화재.

 

1988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어린 여자아이를 갓 구출한 소방관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사다리 위에서 인공호흡을 시도하고 있다.

아이는 6일 뒤 사망했다.

 

사진 출처- http://www.pulitzer.org/

 

 

사진은 돈으로, 비싼 장비로, 기계를 다루는 테크닉 따위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의 기계적 의미가 역사의 한 순간이라면,

사진의 예술적 의미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메시지를 주는 한 권의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osted by BellEto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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